1.속초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38Km정도 올라가다보면, 고성군 거진읍 화진포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김일성 별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화진포의 성을 만나게 됩니다. 김일성 별장은 동해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바라보이는 화진포 해안 절벽 위, 소나무 숲속에 있는데, 마치 중세 유럽의 작은 성과 같이 돌을 쌓아 만든 성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2.그런데 이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을 가보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이 별장에 대하여 몇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의문점은 ‘김일성 별장이 왜 대한민국 땅에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사는 지역, 속초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3.강원도 양양군 현북면에 있는 38선 휴게소가 있는 북위 38선을 기준으로, 그 위쪽에 있는 양양, 속초, 고성 지역 모두가 1945년 8.15 광복 이후 북한의 지배아래 있었던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6.25 전쟁이 끝난 후에 수복이 되어 대한민국 땅이 되기 전까지 북한 땅이었기 때문에, 수복되기 전에 김일성 별장으로 쓰였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습니다. 4.기록에 의하면 북한은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 해수욕장이 경관이 매우 빼어난 것을 알고 있었고, 1948년부터 북한의 귀빈들을 위한 휴양소로 이용했는데, 특별히 김일성과 그의 아내 김정숙,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일과 김경희가 이곳에 자주 머물렀기 때문에 이곳의 이름을 ‘김일성 별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5.그렇다면 두 번째 드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김일성 별장은 과연 김일성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노(No)’ 입니다. 왜냐하면 김일성 별장은 김일성이 북한정권을 수립하기 훨씬 이전이었던 1938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기에 누가 이곳에 이런 웅장한 건물을 지었는지 세 번째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6.여기에 대한 정확한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143년 전에 우리나라를 찾아왔던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윌리엄 제임스 홀과 그의 부인 로제타 셔우드 홀의 이야기를 알아야 합니다. 로제타 셔우드홀은 미국 펜실베니아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였는데, 1890년에 의료 선교사로 조선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1년후 캐나다 의사였던 윌리엄 제임스 홀이 부산으로 입국을 하게 되었고, 1892년에 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7.이후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의료봉사를 했는 가운데 1893년에 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나게 됩니다. 1894년에는 평양에서 사무엘 마펫 목사님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다가,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남편 윌리엄 제임스 홀이 전염병(발진티푸스) 환자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감염이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8.그러자 그의 부인 로제타 홀은 아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3년만에 의료선교사역을 접고, 본국에 돌아감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부인 로제타 홀은 남편과 사별한 후에 3년 만에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남편이 하던 의료사역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리고 박 에스더라는 여학생을 미국 볼티모어 의과대학에 유학을 보내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의사를 배출합니다. 9.그리고 1897년에는 평양에 홀 기념병원을 세우고, 1899년에는 경성의학교를 세웁니다. 또한 서울에 ‘동대문 부인병원’을 세우는데 이 병원이 훗날 ‘동대문 이대부속병원’이 됩니다. 또한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병원과 간호사 양성학교를 세움으로 우리나라 근대 의학의 어머니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로제타 홀에게는 윌리엄 제임스 홀 선교사님이 남긴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셔우드 홀’이란 아이였습니다. 10.셔우드 홀은 조선에서 의료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에서 자라나, 토론토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들처럼 셔우드 홀도 의료선교사가 되어 1925년에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조선에 돌아와 부모님의 대를 이어 의료선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11.특별히 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당시 우리나라에 ‘폐결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평생을 결핵퇴치 운동에 앞장 서셨는데요, 특별히 결핵퇴치기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1932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크리스마스 씰’을 만든 분입니다.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자서전인 ‘닥터 홀의 조선회상’에 보면, 화진포 별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원래 셔우드 홀 선교사님 가정은 원산에 작은 별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원산 바닷가에 별장을 짓고, 한 여름에 모여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2.그런데 1937년 일본군이 갑자기 원산에 비행장을 건설한다면서, 선교사님들의 별장이 있었던 모든 토지를 강제로 수용해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강원도 고성 화진포에 별장을 다시 지을 땅을 주었다 합니다. 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병원일로 인하여 별장을 다시 지을 여력이 없어서, 마침 독일에서 온 건축가, 베버라는 분이 자진해서 별장을 지어주겠다고 하여서, 그에게 모든 공사를 맡겼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사가 끝나 화진포에 와보니, 작은 집을 지어 놓은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성을 만들어 놓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13.그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워 평양에 있던 땅까지 팔았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화진포 별장에서 정작 셔우드 홀 선교사 가족은 1940년 여름 한번 지낸 것이 전부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일제가 1940년 10월에 조선에 살던 모든 외국인 선교사들을 추방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화진포 별장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버려두고, 인도로 가서, 거기서 평생 의료선교사로 살며,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여생을 바치셨습니다. 14.우리가 김일성 별장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화진포의 별장의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선교’ 역사가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 주일에 교회 창립 7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교회의 역사를 깊이 알아야 하는지 역사 속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그 답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얼마나 귀한지를 깨닫게 되고, 우리가 왜 더욱 교회를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속초중앙교회 강석훈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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