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샬롬!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며, 길고 긴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큰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연일 습도가 80%를 넘어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에 특별히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2.지난 6월 19일에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에 '화진포 셔우드 홀 기념관'이 오픈했습니다. 저는 개관 바로 다음 날인 20일에 방문하여 모든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큰 감동이 있어서 토요일에 주방 봉사를 마친 3050실로암 선교회팀과 인도네시아 메단에서 오신 원준철, 윤부현 선교사님 가족과 현지 간사들과 함께 다시 방문했습니다. 3.두 팀 모두 갑작스럽게 '화진포 셔우드 홀 기념관 방문'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감사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화진포로 옮겨 주셨습니다. 그동안 김일성별장, 이승만별장으로 알려진 화진포 지역에 '셔우드 홀 선교사를 통해 조선의 의료선교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4.셔우드 홀 기념관에는 조선을 위해 헌신한 홀 가족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조선에서 의료와 교육의 가치를 실천한 선교사 가정으로, 윌리엄 홀과 로제타 셔우드 홀 의사 부부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1892년에 조선에서 결혼을 했는데, 1894년 11월에 큰 시련이 찾아옵니다. 윌리엄 홀이 풍토병(발진티푸스)에 걸려 갑작스럽게 사망 했기 때문입니다. 5.로제타 홀 선교사는 원래 스크랜튼 선교사의 요청으로 미국 감리교에서 파송된 여자 의사로서, 1890년 조선여성들을 돌보기 위한 보구여관의 책임자로 파송되어서 의료 사역에 전념하며 한국에서의 선교 사역을 시작했었습니다. 남편의 갑작스런 별세로 충격을 받아 미국으로 잠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1896년 로제타 홀 선교사는 보구여관에서 가르치던 박에스더(한국명 김점동)를 미국으로 데려가 볼티모어 의과대학에 유학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조선 최초의 여의사 1호를 배출했습니다. 6.뿐만 아니라 1897년 11월에 다시 조선에 돌아와 평양에 남편을 기리는 기홀병원을 운영하고, 그 옆에 광혜여원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1898년 5월, 4살 된 딸 이디스가 열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0년에 평양에 맹인학교를 세워 조선 최초의 점자교재를 개발하고, 청각장애인(농아)을 위한 특수교육을 하였습니다. 또한 1921년 인천에 인천부인의원(현 인천기독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7.로제타 홀 선교사는 1928년 9월 4일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세우고, 본격적인 조선 최초의 여성의학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1933년 일제의 재인가 과정에서 '조선'이라는 명칭을 빼도록 강요하여, '경성여자의학강습소'로 바뀌게 됩니다. 이후 1937년 순천의 부호 김종익 선생이 거액을 희사하여 1938년 5월 1일 경성여의전이 개교하게 되는데, 보구여관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48년만에 일입니다. 8.로제타 홀 선교사의 남은 아들 셔우드 홀은 1893년에 '조선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으로 1911년 18세에 캐나다 토론토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의대를 졸업하고 결핵학 전공의가 됩니다. 1926년 역시 의사인 아내 메리언 버텀리 홀과 결혼 후, 조선에 돌아와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세우고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는 등 결핵 퇴치 운동에 큰 기여를 합니다. 9.셔우드 홀 선교사님은 1940년 일제로부터 추방당한 후 인도에서 의료선교사 사역을 계속하시면서 '조선회상'과 '인도회상'이라는 책을 쓰셔서 홀 가족이 어떤 일을 했는지 기록으로 남기시고, 1991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대로 그의 시신은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모셔졌습니다. 10.이렇게 윌리엄 홀, 로제타 홀, 셔우드 홀, 메리언 홀 가족이 조선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로제타 홀 선교사는 1943년 68세의 나이로 한국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1951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쪽진 머리에 한복을 즐겨 입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85세에 돌아가신 후, 그의 시신은 화장이 되어 그의 유언대로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남편, 딸과 함께 묻히셨습니다. 11.우리가 사는 속초 위 화진포에 있는 '김일성 별장'이 원래는 셔우드 홀 선교사님의 소유였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고성군(군수 함명준)에서는 고성군기독교연합회 그리고 감리교 관계자들과 함께 선교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화진포에 '셔우드 홀 선교사 기념관'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12.이런 뜻 깊은 역사가 우리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고, 기회가 되면 우리 모두 한번씩 이곳을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또한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지역 사회를 섬기며, 전세계를 가슴에 품는 귀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인생 되기를 기도합니다. 속초중앙교회 담임목사 강석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