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신앙인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별세 <사진1> 1994년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사진출처 대한민국 e영상역사관 <사진2> 2010년 청와대를 방문한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 사진출처 대한민국 e영상역사관 <사진3> 1979년 방한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 미군들과 조깅하고 있다. /사진출처 대한민국 e영상역사관 <사진4>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발언하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사진 마라나타침례교회 페이스북 인도주의자, 신실한 크리스찬으로 칭송 받아온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2월 29일 별세했다. 그는 마라나타침례교회에서 50여 년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으며, 심지어는 대선 후보로 유세 중일 때도 비행기를 타고 와 주일학교 교사 봉사를 했을 정도로 깊은 신앙심을 보여왔다. 1924년 10월 1일 미국의 조지아주 플레인스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카터는 1977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재임 기간인 1978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 평화를 중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중동 평화에 이바지했다. 그러나 이란의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응해 강경한 외교 정책을 펼치느라 소련 곡물 금수 조치를 취하고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을 주도해 냉전시대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해 결국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했다. 그러나 퇴임 후 카터는 평화 중재자로서의 전령사 역할을 감당하며 가장 위대한 전 대통령으로 추앙 받아왔다. 퇴임 이후인 1982년 카터센터를 설립해 전 세계 분쟁 지역에 도움의 손길을 펼치고, 민주주의 취약국에 선거 감시 활동을 지원하고, 전염병 확산의 원인인 기니 벌래 퇴치 등에 매진했다. 이외에도 인권 보호, 빈곤 퇴치, 국제 갈등 해결에 헌신했으며,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하여 집을 직접 짓고, 빈곤층을 돕는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기도 했다. 1994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를 선언하면서 북핵 위기가 불거지자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담판에 나섰다. 북한 외에도 에티오피아, 수단 등 국제 분쟁 지역에서 중재자로 활동해 2002년 노벨평화상도 수상했다. 최근 카터 전 대통령은 피부암인 흑색종으로 투병해왔다. 지난해 2월부터는 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 치료를 받아왔다. 한편,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월 9일을 국가애도의 날로 지정해 각자의 예배 장소에 모여 카터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조의를 표할 것을 요청했다. 출처 : 한국기독공보(https://pckworld.com/article.php?aid=10514437099)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4년 12월 31일(화)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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