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샬롬~ 전세계적으로 확산된 코로나 19로 인하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서 매우 힘들고 어렵습니다. 어제는 전국 유치원에서 초중고에 이르기까지 개학이 4월 6일로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2.확진자가 생겨난 지역에서는 교회에서 아무리 방역을 잘하고, 예방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면서, 서울, 경기권 교회에서는 주일예배 드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모임을 중단한 교회들도 다시 모이기가 어려워서 고심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때에 우리 교회와 신앙이 침체되지 않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은 영적인 우여곡절을 종종 경험하기도 합니다. 때로 은혜 받고,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영적인 침체기를 경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요 한번 침체기(슬럼프)에 빠지면 좀처럼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4.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을 받으시기 전까지만해도 베드로는 정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 이후 그렇게도 자신만만하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배신했기 때문입니다. 5.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에는 그런 베드로를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명의 자리로 나오게 하실까 생각하시며 다가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침체에 빠진 베드로를 갈릴리에서 다시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사명 의식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베드로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6.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번씩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5-19절)’라고 질문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흑역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7.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을 몇가지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실 때 ‘시몬 베드로야’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처음 만나셨을때 부르셨던 이름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이렇게 부르셨을까요? 너의 근본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시몬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주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네 믿음의 과정을 돌아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8.그러면서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첫번째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헬라어로 ‘아가파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두번이나 예수님은 그렇게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의 사랑보다는 낮은 수준의 사랑인 ‘필레오’였습니다. 이렇게 베드로가 예수님이 사용하신 것과 다른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과 같이 사랑하지 못함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9.결국 예수님께서는 세번째 질문에서 베드로가 사용했던 단어, ‘필레오’를 사용하시면서, 다시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근심하면서, '내가 주님을 사랑(필레오)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10.이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이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수준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을 하시는 예수님이 베드로를 위해, 베드로의 수준에 맞게 자신을 낮추시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오늘도 그 사랑이 이 시련을 이겨내게 합니다. '사랑합니다. 주님!' 속초에서 강석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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